횃불병원 부대표: 마자스 메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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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자스 메어리
1982년에는 소련이 교육 등 여러 분야에 도움을 주어, 캄보디아 학생들에게 베트남어, 러시아어, 불어 등을 가르쳤는데 주로 기독교인 교사가 많았다. 러시아어 배우기를 좋아했던 메어리는 1987년에 하나님을 믿는 교사를 만나, 아직 공산주의 체제가 유지되던 때임에도 불구하고 담대히 세례를 받았다. 그 세례 직후 시작된 친척들의 외면과 핍박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은혜로 그녀를 지켜주셨고, 그 미래를 열어 주셨다.
1988년에 메어리는 러시아언어센터에 들어가는 기회를 얻었다. 마침 거기는 예수 믿는 러시아 교수들이 많았다. 그녀는 거기서 믿는 여교수 덕분에 열심히 러시아어를 배웠고 결국 수석으로 졸업하여 계속해서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할 수 있었다. 1993년부터 3년간은 말레이시아에 와서 부족한 영어를 보충하라는 조부의 권고를 따라 유학을 갔으나 이슬람교 선교사 집안 출신의 친척들로 인하여 유학 기간 내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현재도 친척들 중에는 기독교인은 소수이고 절대 다수가 기독교를 반대한다.
말레이시아에서 종교 차이로 핍박을 받았으나 지역의 교회 목사를 알게 되어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는데, 그것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1996년에는 놀라운 일을 경험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보니 전에 다니던 러시아언어센터가 프놈펜 시 중앙에 있는 교회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너무 기뻐, “이 학교가 우리 민족이 하나님을 섬기고 기도할 수 있는 교회가 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돌립니다” 라고 외쳤다고 한다.
귀국 후 한 동안 한국 회사에서 일을 하였는데 그 회사가 문을 닫아, 1997년부터 7년 동안은 외국계 은행에서 일을 했다. 그러나 출산 후 몸이 너무 쇠약해져서 2004년 말에는 은행을 사직하고, 한국 대사관에서 잠시 프런트 근무를 하였지만 과중한 업무 때문에 다시 사직하였다. 그녀의 꿈은 NGO에서 근무하는 것이었는데, 정말 놀라운 은혜로 외국인 단체의 의료선교 NGO인 횃불병원(Torch Medical Center)에서 현지인 대표로 일하게 되어 그 꿈이 실현되게 되었다.
그녀는 지난달부터 노턴 대학교에서 “관리 및 개발” 야간 강좌를 듣기 시작했다. 한국 횃불선교센터의 지원을 받고 있는 횃불병원을 더 크게 발전시켜 모든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기관이 되게 하고 싶은 소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 자신뿐 아니라 모든 캄보디아 사람들을 위해 보다 의미 있게 쓰여지는 삶이 되기를 소망하며, 지금도 기도하면서 빈민촌과 학교를 돌며 횃불병원 전단지와 함께 캄보디아 전도지를 열심히 배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