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 목사
9월 10일 월요성서강해가 열렸다. 워가 2007의 준비행사로서 진행되는 이 행사에 이미 한번 강사로 초빙되었던 이건호 목사가 다시 초청되어 말씀의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정미연 해외 총무의 해외 참가자를 위한 기도, 류화순 사모의 사우디아라비아를 위한 기도, 이향숙 집사의 이스라엘을 위한 기도의 순서 후 이건호 목사의 말씀 순서가 이어졌다.
(이하 말씀 요약)
제목 : 영적 전사에게 필요한 기름부으심
본문 : 사사기 15장 9절~20절
나비효과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지극히 미세한 나비의 날개 짓 한번이 공기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고 구름을 일으키는 효과를 내며, 장마까지 일으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미국 발 서브프라임의 효과로 한국, 중국, 홍콩까지 난리가 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하는 중보의 효과는 나비효과의 배의 능력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신의 권능이 임했을 때! 삼손은 턱뼈 하나로 천 명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능력 이상의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입니다. 나의 능력 이상의 능력이 내게서 샘솟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학문이 없던 범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이 임할 때, 그의 한 번의 설교로 5000명이 회심하는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경은 기름부으심을 통한 놀라운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사무엘 16장 13절 이후를 보면, 다윗에게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된 이후 그에게 일어난 몇가지 일이 있습니다. 어떤 일들인가 하니, 먼저는 사울의 병기든 자가 되어 사울을 옆에서 도운 것입니다. 병기 든 자가 되어 사울을 돕기도 했지만, 악기를 연주하여 사울을 괴롭히던 악신을 물리치는 일도 하였습니다. 다음은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불안에 떨게 하던 골리앗을 보기 좋게 꺾어버린 일입니다.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서 첫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이 임하면, 남을 도울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저는 90년 11월에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때에는 기도만 하면 하늘에서 불인지 물인지 뜨거운 것이 엄청나게 쏟아졌습니다. 당시에 청년부 회장으로 섬기고 있었는데,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의 경험과 더불어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과 대화만 하면 그 사람이 펑펑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제 앞에서 막 울었습니다. 한번은 담배와 술에 찌들대로 찌든 한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정말 상태가 심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학생이 수련회에 왔길래 제가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기도를 받더니 쓰려졌습니다. 1시간동안 쓰려져 누워 있었습니다. 다른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그 여학생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간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도를 받는 순간 흑구름이 벗겨지더라. 그리고 1시간동안 계속 그 어두운 흑구름이 하나씩 하나씩 벗겨지더니 마지막에는 어느 한 빛이 자기 가슴을 쳐서 일어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학생은 그 이후 캐나다로 가서 신학을 하였고, 지금은 한 목사의 아내가 되어 훌륭한 사모로서 귀한 일들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의 첫 번째 특징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의 그 다음의 특징을 보면 자기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해지며, 재정적인 풍요도 따라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신에 크게 감동된 다니엘은 54년간 국무총리일을 수행하였습니다. 왕들은 계속 바뀌었지만, 다니엘의 위치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만큼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입니다. 기름부음을 뜻하는 단어를 살펴보면, ‘마샤’라는 단어는 영적인 기름부음을 의미하며, 기름부음을 의미하는 다른 단어인 ‘수트’라는 단어는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의 기름부음에는 물질적인 풍요로움도 함께 오는 것입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파울로의 소설 연금술사에 보면 참으로 흥미로운 대목이 나옵니다. 그 소설에서 한 젊은이가 인생을 참되게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그 순례길에서 그는 어느 이상적인 위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 위인은 어느 성의 주인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과 매우 깊고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동시에 물질적으로도 또한 매우 풍요로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풍성하게 물질을 베풀었습니다. 청년이 그 사람에게 질문했습니다. “나도 당신과 같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자 그 성주가 대답하시를 “내가 이 숟가락에 기름을 채워 당신에게 주겠소. 당신은 기름이 담긴 이 숟가락을 가지고 내 성의 모든 방들을 직접 돌아보시오. 나는 그 방들에 나의 인생에서 소중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전시해 놓았소. 다만 유의할 점은 당신은 그 모든 방을 구경하면서 이 숟가락의 기름을 흘리지 말고 그대로 내게 가져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그렇게 한다면 당신은 훗날 나와 같은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청년은 그 성주의 말을 따라 모든 방들을 둘러보고 그 성주에게 돌아와서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모든 방들을 다 둘러보고 왔습니다. 정말 큰 도전을 받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도 이제 당신과 같은 삶을 살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성주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당신 숟가락의 기름은 다 어디에 있소?” 청년의 숟가락에는 기름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주는 말했습니다. “기억하시오. 중요한 것은 내면의 기름부음이라는 것을. 당신의 인생의 여정에서 그 내면의 기름부음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 다면, 당신은 나와 같은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오” 참으로 많은 것을 말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의 세 번째 특징은 자신감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아가의 술람미 여인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나는 게달의 장막같은 찌라도 솔로몬의 휘장이다!” 게달의 장막은 당시의 유명한 공산품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명품장막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명품장막을 무엇으로 만들었느냐 하면 늙은 양의 가죽으로 만들었습니다. 즉 술람미 여인은 자신의 피부가 나쁘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본문을 보면 피부가 검다는 언급도 나오는 것을 보면, 일단 피부가 하얗거나 매끄럽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술람미 여인은 노래합니다. 자신은 솔로몬의 휘장이라고 말입니다. 1장 12절을 보면 “왕이 침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뿜어냈구나”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기름부음은 자신감을 주는 것입니다. 자신감있는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외모가 아닙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진정한 매력은 자신감에 있다고 믿습니다. 열처녀 비유를 보십시오. 신랑이 왔을 때에 누가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까? 예쁜 처녀입니까? 외모가 아름다운 여인입니까? 아닙니다. 기름이 있는 처녀들이 잔치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신랑은 기름을 준비한 처녀들만을 영접하였고 나머지 처녀들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등은 외적 증거요 기름은 내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기름이 있습니까? 내면의 기름이 있습니까?
노나라의 공자는 매우 인기있는 인물이었습니다. 190의 키에 시인이요 수금도 잘 탔다고 하니 그의 인기가 어느 정도 였는지는 짐작할 만합니다. 그런데 공자와 동시대에 공자의 인기를 능가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마타타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마타타의 외모는 정말 형편없었다고 합니다. 아니 형편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보는 사람마다 구토를 할 정도의 구역질나는 외모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 여인들의 소원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다음 생에 태어나면 마타타의 아내가 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어느날 공자가 마타타의 강연을 1시간정도 듣고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자는 말했습니다. “나는 그를 보는 순간 토할 뻔 했다. 그러나 10분이 지나자 그에게 끌리기 시작했고 30분이 지나자 그를 사모하게 되었으며, 1시간이 지나자 그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외모가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내면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내면에는 기름이 있습니까? 등, 즉 외적인 직분은 결국 큰 소용이 없습니다. 목사라고, 장로라고, 집사라고 하는 직분보다 비할 수 없이 중요한 것이 바로 내면의 기름인 것입니다.
그럼 이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은 언제 우리에게 임하게 될까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3~14절을 보면, 그가 결박되어 블레셋 사람들에게 끌려나가던 순간에 임했습니다. 바로 그가 가장 위기에 처한 그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신이,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이 그에게 임했던 것입니다. “그의 팔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그의 팔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떨어졌다!! 얼마나 놀랍고 통쾌합니까? 저 유명한 시편 23편을 보십시오. 기름부으심은 사망의 골짜기를 통과한 후에 있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예수님을 3번 부인하고 다시 옛 적 어부일을 하는 어려움의 시기를 통과한 후 그에게 기름부으심이 임했습니다.
올해 한국교회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1907년 어게인 평양대부흥을 위해 기도했건만 결과는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아프간 사태를 비롯하여 학력위조문제까지 온 대한민국이 들들 끓고 있습니다. 합심해서 아예 대놓고 교회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예수쟁이들이 숨을 곳이 없고 교회는 울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오순절의 기름부으심 전까지 실수를 다 허락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기도할 수록 꼬이십니까? 제대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두들겨 맞아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릇을 닦으시는 중이십니다. 그릇을 깨끗이 닦는 시간이 없으면 기름부으심은 임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그릇을 정화하는 시간이 지난 후에, 비로소 분명히 기름이 부어지는 것입니다. 죽으면, 부활하는 것입니다.
1907년의 평양대부흥을 생각해보십시오. 1905년 을사조약, 1906년 대중의 봉기의 어둠의 역사 후에 1907년 엄청난 부흥의 불길이 임했습니다.
지난 주 타임지 표지에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사진이 실렸습니다. 얼마전 그 분의 일기장이 공개되어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느낄 수 없다. 내겐 예수가 없다”라는 일기의 글귀가 동요를 일으켰습니다. 모든 이가 존경했던 데레사 수녀님도 믿음이 없었다니 이 얼마나 충격인가!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목마름에는 정화를 위한 목마름이 있으며 이것을 퍼가티브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외에도 더 큰 상급을 위한 목마름이 있으니 이것을 리페라티브라고 일컫습니다. 데레사 수녀님의 목마름과 갈증, 그러한 어려움은 리페라티브의 목마름이었습니다. 그렇게 일기에 갈등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그 목마름 이후, 결박이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불탄 삼과 같이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워가2007행사가 이제 한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여기에 모일 제 3세계 사람들에게는 많은 결박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 대부분은 영적인 결박입니다. 음부의 권세, 그 어두움의 권세는 반복 됩니다. 결박을 끊어야 그 반복이 끊어집니다. 얼마나 끔찍합니까? 제가 아는 한 분이 있는데, 이 분은 두 번 이혼했습니다. 이분의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때렸고,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렸고, 결국 이 분도 자신의 아내를 때려서 이혼당하고 재혼해서 또 때려서 또 이혼당했습니다. 얼마나 끔찍합니까? 결박을 끊어야 합니다. 이 결박을 끊는 방법, 음부의 권세, 죄의 멍에를 부수는 방법이 기름부음인 것입니다. 기름부음 까닭에 멍에가 끊어지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18절을 보면, 기름부음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삼손에게 위기가 닥칩니다. “목말라 죽겠나이다” 울부짖습니다. 19절을 보면 “우묵한 곳을 터치시니 생수가 나왔다”라는 설명이 나옵니다. 오늘 14절의 기름부으심은 성령의 외적 기름부으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오늘 19절의 말씀은 바로 성령님의 내적 기름부으심으로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내적 기름부으심을 통해 정신이 새롭게 회복됩니다. 말씀을 잘 살펴보면, 성령님의 외적인 기름부으심은 위기의 순간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내적인 기름부으심은 그 다음의 위기의 순간에, 우묵한 곳을 터치셔서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 우묵한 곳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이 우묵한 곳은 바로 상처와 멍든 곳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코’라는 원어단어에는 다른 뜻이 있습니다. 즉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의 우묵한 곳은 무엇이었습니까? 남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우묵한 곳을 터치셔서 그 여인을 구원하셨습니다.
여러분 다 함께 따라해보겠습니다.
“죄가 있으면 생각나게 하시고
상처가 있으면 떠오르게 하소서”
여러분 죄가 떠오를 때마다 하나님께 싹싹 비시고, 상처가 떠오를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통곡하십시오. 그냥 우십시오.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기도문으로 치유받은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매우 완고하고 예수 믿지 않는 분이었지만, 이 기도를 통하여, 3일동안 이 기도를 하며, 예수님을 만나서 뜨겁게 영접하고 말기의 암도 치유받는 엄청난 역사가 있었습니다.
우리 마음의 이 우묵한 곳이 터질 때, 그 상처와 분노가 터질 때에 비로소 성령님의 내적인 기름부으심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적인 기름부으심의 역사 이후 오늘 본문은 어떻게 끝나고 있습니까?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이십년을 지내었다고 나옵니다.
결박을 끊는 것은 기름부으심입니다. 우리 가운데 이러한 기름부으심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길 바랍니다. 특별히 금번 워가2007 모든 대회 속에서 하나님의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이 충만히 임하여 모인 사람들 모두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기름부으심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