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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인물

21세기 에스더들에게 던지는 에스더의 이야기

워가 준비집회 진행한 김윤희 교수 특별기고
21세기 에스더들에게 던지는 에스더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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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에 걸친 워가 코리아를 위한 에스더 강해를 무사히 마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에스더서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유일한 책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인들에게 닥친 불행에 대해 과연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어 질 것인가를 드라마와 같은 스토리의 전개를 지켜보면서 결론을 맺도록 디자인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읽는 독자들에게 유다인들의 운명이 극적으로 전환되는 상황에서 과연 하나님은 어떠한 역할을 하셨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답은 우리각자가 책 속에서 발견하며 내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답이 주관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우리를 유도하며 조심스럽게 스토리를 펼쳐 나갑니다.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그녀와 그녀의 민족의 운명을 결정짓는 유명한 발언입니다. 또한 모르드개의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는 반어적인 질문은 모두 이미 그들의 삶과 사는 방법이 그들 스스로가 결정짓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계획 속에서 움직여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비장한 각오와 헌신에 의해 유다인들의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그것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절기가 부림절입니다. 에스더서는 이렇듯 부림절의 유래를 설명해 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부림절의 의미는 본문에서 ‘유다인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된 것’ 이라고 정의합니다. 부림절이 되면 유다인들은 지금도 회당에 모여 에스더서를 읽으면서 모르드개의 이름이 나오면 ‘와’하고 환호하고 유다인의 원수 하만의 이름이 나오면 ‘우~’ 하면서 야유를 보내며 축하합니다. 그러나 부림 정신의 진정한 축하는 종말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에 가는 그 날까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들은 끊임없이 있을 것이고 죄악된 세상에서 사는 한 우리의 고통과 환란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시록 에서는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고 격려하며 그런 상황에서도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는 말씀으로 믿는 자들을 위로해 주십니다(계 2:10).

그러기에 모든 믿는 자들의 부림 정신의 진정한 축하는 마지막 때에 모든 심판이 끝나고 이루어질 것임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때에는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계 21:4)는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천국에서의 부림의 축하를 고대하며 그 때까지는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하나님의 백성과 운명을 같이하며 헌신한 것처럼 우리 모두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왕국에 헌신할 것을 종용하고 있습니다.

에스더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할은 어떤 성경학자가 지적한 대로 ‘불확실’ (uncertainty)하고 ‘불확정’ (indeterminacy) 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 설명이 가능한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개입을 발견하기가 힘들다는 뜻입니다. 그런 속에서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자신들의 운명과 삶의 계획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에 맞추었습니다. 에스더서의 매력과 공헌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들도 어쩌면 때로는 하나님의 간섭과 계획을 잘 모른 체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요청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스더서의 결과와 결론은 다시한번 우리의 의심과 의문들이 부질없는 것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결국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와 헌신으로 우리 모두가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개입하심을 신뢰하며 사는 것입니다. 에스더서는 그러한 초대와 도전을 우리 모두에게 던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