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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와 프로그램 소개

주제강의 10/18_ 간증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오직 주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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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세(Semse) 사모 (네자티 선교사 부인)

 
저는 남편이 터키에서 첫 번째 순교자 된 것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제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느끼고 있고 남편을 죽인 이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터키 민족을 사랑했던 것처럼 저도 터키 민족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제 남편은 터키 민족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5명의 살인자는 옳은 일을 한 사람을 죽였습니다. 저는 살인자들을 생각하며 때로는 눈물 흘리며 가슴 아파합니다. 왜냐하면 제 남편은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금식하면서 기도할 때 제 남편을 죽인 살인자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남편과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오직 주를 위해서입니다. 우리 삶이 헛되지 않게 그렇게 주님을 위해 살기 원합니다.
/ 임재금 기자 ljg14@onnuri.or.kr

<터키 순교자 영상 요약>
이슬람의 훈련된 다섯 명의 모슬렘 청년들에 의해 틸만 선교사(독일), 네자티 목사(터키), 우우르 형제(터키), 이 세 사람은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살해범들은 예수 믿고 함께 성경공부와 기도모임을 했던 형제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계획된 일을 저지르기 위해 준비했던 것입니다.
2007년 4월 18일 오전 터키 중동부 도시 말라트야에서 성경 배포사역과 문서사역을 하는 기독교 출판사에 5명의 모슬렘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들어왔습니다. 이들은 형제들을 총으로 위협해 의자에 묶은 다음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알라를 유일한 최고의 신으로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며 칼로 고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총과 칼, 줄과 수건을 미리 준비한 이들은 형제들을 잔인하게 고문하면서 핸드폰 카메라로 녹화를 했습니다.
네자티 목사는 99번, 독일인 선교사 틸만은 156번이나 칼로 찔렸으며, 우우르 형제는 그 찔린 회수를 셀 수 조차 없었습니다.
그들은 형제들의 손가락 하나하나를 잘랐으며, 코와 입과 항문까지도 칼집을 내어 벌려놓았습니다. 또 배에서 창자를 꺼내 다른 형제들이 보는 앞에서 조각을 내었습니다.
우리 믿음의 형제들은 3시간 동안의 잔혹한 고문에도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난도질을 당한 형제들은 결국 모두 목이 잘려 순교당했습니다.
네자티는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무슬림으로 태어났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죽을 것입니다.”
터키의 신자들은 그들이 노출되고 모슬렘들의 표적이 될 수 있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담대하게 네자티의 장례식에서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스탄불 광장에는 수백명의 숨어있던 터키인 그리스도인들이 “우리도 그리스도인이다. 우리도 죽여라”고 외치며 몰려나왔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모두 주님 오실 때까지 함께 가기를 원합니다. 파송된 선교사님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잃어버린 백성들을 위하여, 나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일이 제한받지 않도록 노력하기 원하는 자신을 위하여….

내 인생의 금식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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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자 대회장

금식하며 횃불선교센터 건축 …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기도

지난 30년간 해온 일을 한마디로 표현 한다면 횃불회 사역입니다. 횃불사역을 통해 제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을 누렸고, 가장 큰 보람도 느꼈으며, 가장 큰 슬픔도 겪었다 할 수 있습니다.
횃불회는 지난 1978년 제가 살던 집에서 매주 화요일 두 세 사람이 모여 나라와 민족과 가정을 위해 기도하면서 만든 ‘루디아횃불회’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어서 부부, 미용, 사모, 사회사업, 미술인 횃불회 등 15개 횃불회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사역했습니다. 1990년대에 와서 전국 7개 도시로 번져나가면서 지난 90년대에 국내에서 가장 왕성하게 사역했습니다. 부흥하기 시작하던 한남동시대를 마감하고 더 큰 사역을 위해 다른 곳으로 옮겨야했습니다. 기도하던 가운데 1992년 드디어 양재 횃불선교센터로 옮겨왔습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남편 최순영 장로님의 힘이 아니면 횃불선교센터를 건축할만한 자금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화여대 대강당만큼 5,000명이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40일 오전 금식 중이던 어느 날 횃불회 모임이 끝난 뒤 성전 단상 위로 올라가 의자에 머리를 파묻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기다리시는 일은 빨리 이뤄지는 것 같습니다. 그 날, 하나님께서 너무도 분명한 음성으로 제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네가 그렇게 새 성전을 지어달라고 간절히 원하니 내가 지어주마. 그러나 반드시 네 남편을 통해 지을 것이다. 내가 그러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기도 응답을 받았지만 눈앞에 나타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교회를 가려하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남편은 전화를 끊고 난 후 씁쓸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청와대에서 예전에 샀던 땅을 다시 가져가라는 전화였답니다. 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이 바로 나중에 우리가 횃불선교센터를 지을 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횃불선교센터의 부지는 제 남편이 회장으로 있던 회사의 소유였습니다. 그 회사에서 아파트를 짓기 위해 사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청와대 윗분이 원해서 팔았던 땅을 다시 원주인인 남편에게 사라고 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또한 되돌려 받은 후 보니 그동안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팔 때는 원래 주택을 지을 수 없는 땅이었는데, 집을 지을 수 있는 용도로 변경돼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고 오직 금식기도만 하는 사이에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들을 다 해놓으셨던 것입니다.
제가 이곳 횃불선교센터를 짓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은 세상의 방법과는 아주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번 하신 약속은 반드시 이루고야마는 신실한 분이라는 것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돌이켜보니 그동안 남편도 교회를 열심히 섬기며 회사의 십일조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회사에 힘든 일이 있으면 새벽기도를 하며 삼일 금식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은 그 응답을 꿈으로 예언으로 남편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남편은 극동방송, 온누리교회 등 여러 교회를 지어주었습니다.
저도 횃불센터를 짓기까지 40일 동안 오전 금식을 했습니다. 월요일마다 사모횃불회가 끝나면 어김없이 성전 앞 의자에 머리를 파묻고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때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를 더 많이 했습니다. 나라의 위기가 올 때에는 김준곤 목사님과 함께 구국비상금식기도도 했습니다.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금식을 통한 신령한 축복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금식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령한 꿈을 무시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꿈은 우리가 포기하면 망상이 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가족과 회사와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 임재금 기자 ljg14@onnuri.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