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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스케치

저녁집회ㅣ 당신은 변화될 수 있는가(김윤희 교수)

당신은 변화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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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희 교수 (WOGA 부위원장)

여러분은 여기 왜 왔습니까.
변화된 여러분을 하나님이 쓰시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변화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국가와 세계를 변화시키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 와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변화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변화란 무슨 변화, 어떤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까. 오늘 여러분에게 변화에 대한 교리적 설교를 전하기보다는 한 사람을 소개해 드리기를 원합니다. 그 사람은 삶의 변화를 겪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을 통해 우리가 배울 점을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구약학 교수니까 구약의 유명한 한 가족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야곱의 가족입니다.
야곱의 가족관계를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들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야곱은 자신의 다른 모든 아들보다 요셉을 특별히 더 사랑합니다. 문제는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고 레아는 미워하는 데서 나옵니다. 요셉은 라헬의 아들입니다. 다른 아들들은 레아의 아들이거나 첩의 아들들이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편애했습니다. 창세기 37장 3~4절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이 늘그막에 요셉을 얻었기에 다른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귀한 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자기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요셉을 미워해 그에게 다정한 인사말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을 판 냉정한 인물 유다
요셉의 형들은 야곱이 요셉에게만 귀한 옷을 지어 입히는 등 편애를 보이자 요셉을 미워합니다. 다른 가정에서도 흔히 있을 수 있겠지만 야곱의 가정에서는 이 문제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귀한 옷을 입고 형들이 일하는 곳으로 갑니다. 요셉은 귀한 옷을 입고 나갈 정도로 둔감한 십대였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집어넣습니다. 유다는 요셉을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자고 제안합니다.

유다를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다는 어떤 사람입니다. 유다는 꾀가 많고 냉정하고 실리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을 판 사람도 유다인 것은 아이러니컬합니다. 유다라는 이름은 찬송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셉이 애굽을 다스리게 되고 기근이 닥쳤을 때 요셉의 형들은 베냐민만 놔두고 애굽으로 식량을 구하러 옵니다.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고 스파이라고 하면서 시므온을 놔두고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베냐민은 요셉과 유일한 친형제였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형들이 자기를 다치게 한 것처럼 베냐민에게도 나쁜 짓을 했는지 걱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베냐민을 데리고 간다는 아들들의 말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베냐민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흰머리가 난 자신을 죽이는 것이라면서 힘들어합니다. 여기서 레아 자녀들과 라헬 자녀를 항상 구분하는 야곱의 편애를 볼 수 있습니다. 곡식이 떨어지자 할 수 없이 야곱이 아들들을 베냐민과 함께 애굽으로 다시 보냅니다. 요셉의 은잔이 베냐민의 가방에서 나오는 장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위기입니다. 그러나 형들에게는 베냐민을 정상적으로 없앨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형들의 반응은 달라져 있었습니다. 눈물로 옷을 찢고 돌아와 요셉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요셉이 꿈이 계속해서 실현되고 있습니다. 이상한 것은 베냐민의 가방에서 은잔이 발견되었는데도 다른 형들이 모두 대가를 치르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건의 절정에 이제 다다르게 됩니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놀라운 유다의 변화
유다의 역할이 부각됩니다. 창세기에서 가장 길고도 호소력 있는 유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베냐민을 놓아 달라는 설득력 있는 말입니다. 어떤 학자는 이 부분이 구약에서 가장 설득력 있고 고귀한 웅변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유다의 설득은 세 가지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우선 과거에 일어난 일을 이야기합니다. 유다는 이 한 장에서 아버지라는 단어를 14번이나 사용하면서 인륜지사인 자식으로서의 도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아버지라는 말은 요셉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합니다. 그 많은 세월동안 요셉은 얼마나 아버지를 그리워했겠습니까. 유다는 여기서 아버지 야곱이 요셉과 베냐민을 다른 아들들보다 더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정해버립니다. 유다는 이제 시기와 질투의 마음으로 통회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부분을 부자지간과 형제지간 끊어졌던 고리가 회복되고 이어지는 놀라운 치유의 언변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 유다는 베냐민이 돌아가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말합니다. 아버지가 죽는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듣는 요셉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세 번째가 우리를 가장 놀라게 하는 사건입니다. 유다는 자신이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베냐민을 대신해 종이 되겠다고 말합니다. 과거에 돈 받고 요셉을 팔아버린 잔인하고 냉정한 유다가 동생을 대신해 종이 되겠다고 하는 장면입니다. 작은 십자가 사건이 여기서 일어난 것입니다. 유다야말로 변화된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변화될 때에만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 유다의 변화로 인해서 요셉의 모든 앙금이 다 씻겨 졌습니다. 요셉은 자기의 과거를 잊어버리기위해 아들의 이름을 '잊어버린다'는 뜻의 므낫세로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의 과거를 잊어버리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요셉이 형들을 시험한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유다의 변화는 요셉의 영혼을 소생시켰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도록 만들었습니다.

유다의 이 말을 듣고 요셉이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라고. 하나님이 당신들을 구원하려고 앞서 보내셨다고 말합니다.
유다의 말을 듣자마자 요셉은 자유를 느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의 모든 삶을 해석했습니다. 가족 전체의 화합을 가져 왔습니다. 모든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유다 때문에 12지파가 만들어집니다. 유다 한 사람의 변화가 위대한 역사를 낳았습니다. 유다는 메시아의 조상이 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왜 하나님이 유다를 예수님의 조상으로 선택하셨습니까.

한 사람의 변화가 역사 바꿔
처음에 했던 질문을 돌아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여기 왜 왔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라고 합니다. 어느 시대보다도 하나님은 이 세대를 여성들이 이용될 수 있도록 열어 놓으셨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회나 국가가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든 없든 여기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컨퍼런스를 보십시오.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집회라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맞습니까. 이런 컨퍼런스가 있습니까. 80개국 이상 그것도 미전도종족에서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모여든 컨퍼런스가 일찍이 있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이 컨퍼런스를 보자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도 준비가 되었을 때 오셨습니다. 이 컨퍼런스가 왜 일어났습니까. 여성이 일어나는 시대에 열렸다는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여러분을 아주 조심스럽게 선택해서 모셨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국가를 책임지고 세계를 책임질 여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목적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복음화 시키는 사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남자만으로는 안 됩니다. 모슬렘 국가에서는 남성이 여성에게 다가갈 수 없지 않습니까. 바로 여러분들이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순종하지 않으면 다른 여성 그룹을 이용할 것입니다. 유다가 변했다면 우리도 변할 수 있습니다. 유다처럼 자기 희생의 단계까지 변해야 합니다.


온누리신문 정리 차명권 기자 salt@onnuri.or.kr